올해 건진 최고의 책( 비소설 부문) :: 김수영 산문집
..이라고 이름은 붙였지만 뭐 대단한건 아니다. 내가 책을 읽으면 얼마나 읽는다고 소설/비소설/인문/예술/과학 등으로 분야를 나눠 최고의 책을 뽑겠는가. 버뜨! 이 책만은 꼭 소개를 하고 넘어가고 싶다. 지금 내가 읽고 있는 '김수영 전집 :: 산문'이 바로 그것이다. 김수영의 산문집을 처음 접한 것은 김규항의 'B급 좌파'를 통해서였다. 김규항은 그의 칼럼 '너에게 수영을 권한다' 에서 이렇게 말한다. "...초보 좌파로 자기규정하는 내가 맑스주의 원전이나 신자유주의 비판서 따위를 끼고 살지 않고 반공포로 출신의 자유주의자 김수영을 끼고사는 일은 썩 어울려 보이진 않지만 수영을 읽을 때 나는 늘 평화롭다. 내가 수영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뜨거움의 총량이 (김)지하를 넘어서면서도 그 뜨거움의 방식이 나같은 치졸한 인간에게도 적용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김규항, '너에게 수영을 권한다 中"


이때부터 그의 산문집에 관심이 생겼지만 이상하게 오래도록 보지 못하다가 이번에 헌책방에서 쇼핑할 때 구했다. 개정판이 나오기 전 판이라 지금은 절판된 것인데 그래서 그런지 한문이 많다. 그래도 눈치껏 때려 맞추며 지금까진 별 무리없이 읽고 있다. 이 책을 읽으니 작년 이맘 때쯤 이비에스에서 했던 드라마 명동백작이 생각난다. 그때는 김수영도, 박인환도 별 관심이 없었기에 특별히 챙겨보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으니 그 드라마가 몹시도 당긴다. 이비에스에도 다시보기 기능이 있으면 돈을 주고서라도 한번 봐야겠다.


나는 김수영이 교과서에도 이름이 실린 유명한 시인이라 하여 몹시 근엄하고 생명력있는 호흡을 지닌 왠지 모르게 범접하기 힘든 사람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다. 그는 몹시도 인간적이고 재미있고 소시민적이기까지 하다. 먹고사는 문제에 고민하고 머리를 빗고 머리카락을 제대로 치워놓지 않는 자신의 아내와 싸우고 공부를 지지리도 못하는 아들의 공부를 돌봐주다 화를 내기도 한다. 그의 산문집 중에는 특히 재미있는 글이 많은데 '나는 寅煥(인환)을 가장 경멸한 사람의 한 사람이었다. 그처럼 재주가 없고 그처럼 시인으로서의 소양이 없고 그처럼 경박하고 그처럼 값싼 유행의 숭배자가 없었기 때문이다.'로 시작하는 '朴寅煥'(박인환)이라는 글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죽은 박인환에게 바치는 조사인데 난 이때까지 이렇게 솔직하면서도 꾸밈없는 조사를 본 적이 없다.


일전에 D신문의 「시단평」을 통해서 나는『한국의 현대시에 대한 나의 답변은 한마디로 말해서 <모르겠다!>이다.』라는 말을 했다. 이 글을 보고 모 소설가가 『모르겠다고 해서야 쓰겠나. 잘 키워가도록 해야지』라는 말을 하더라는 말을 들었다. 이 소설가는 이 글을 보면 또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렇게 자포자기가 돼서야 쓰나. 아무리 보수가 적은 번역일이라도 끝까지 정성을 잃지 말아야지』라고. 나는 그를 평소부터 소설가라기보다는 학교교사로 보고 있었지만 그 말을 들은 후부터는 더욱 그 感이 심해졌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고급 <속물>들이 참 많다. <'번역자의 고독 中'>


얼마전에 한국의 유명 재벌 S그룹의 딸이 자살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한번도 본 적 없는 그녀의 죽음을 슬퍼하고 공개적인 추모의 움직임까지 일어났다. 나는 김수영의 말을 빌려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나는『왜 한국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죽음을 추모하는지 <모르겠다!>』이 글을 보면 어느 누구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니, 돈이 많고 적고, 그녀가 이건희의 딸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사람이 죽었다는데 당연히 슬퍼하고 추모를 해야지.』라고. 김수영이 고급<속물>을 비꼰지가 벌써 수십년이 훌쩍 넘었는데, 아직도 이 나라에서는 그런 고급<속물>들이 넘쳐난다.
by ☆*깨*☆ | 2005/12/02 23:56 | 깨's Books | 트랙백 | 덧글(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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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첼로♡ at 2005/12/03 00:51
오- 나도 보고 싶다-! 몇권 짜리야?? 돈이 없어서 비싸다면 사지 못하겠지만 꼭 빌려서라도 봐야지!!!
Commented by gforce at 2005/12/03 08:19
오오, 멋진 글입니다. 한국 가게 되면 구해봐야겠네요.
Commented by 대추 at 2005/12/03 09:55
한국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에게, 특히 시를 전공으로 삼은 사람들에게 김수영은 꼭 한 번 거쳐야 할 시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죠. 가인박명이란 말이 어울리는 분입니다.
Commented by ☆*깨*☆ at 2005/12/03 12:28
첼로♡/ 김수영 전집은 총 2권인데 1권이 詩이고 2권이 산문이야. 그니까 산문만 치면 한권이지.ㅋ 개정판 보니까 2만원이더라-_-; 내꺼엔 4000원이라고 씌여져 있었는데 그새 5배나 가격이 올랐어. 한번 빌려서라도 꼭 봐^^


gforce/ 네..^^ 언제 한국에 돌아오실지 모르겠지만 오시면 꼭 구해서 읽어보세요. 매우 재미나요.ㅋ


대추/ 맞습니다. 특히 문학의 사회적 참여를 놓고 벌어진 이어령과의 논쟁은 문학을 공부하면서 피해갈 수 없는 지점이지요. 아직 김수영의 시집은 읽지 못했는데 이걸 다 읽고 시집도 구해봐야겠어요.
Commented by 바람 at 2005/12/03 21:36
글쎄,,, 그걸 추모라고 생각 하나요? 좀 유명인 이어서 전말에 드러난 것일 뿐,,, 사람의 죽음을 그것도 젊은 아가씨의 죽음을 안타까워 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Commented by ☆*깨*☆ at 2005/12/03 23:16
저희 부모님은 그 사람이 누구신지도 모르셨어요. 그리고 알고 나서도 별로 안타까워하시지 않으시던데요. 저도 마찬가지구요. 그냥 무덤덤했어요. 죽음이 슬픈 것이라면 젊은 아가씨이던 늙은 아저씨이건 모두 안타까워해야겠지요. 하지만 전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의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추모와 삼성을 떨어뜨려놓고 생각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생각이야말로 너무나 관념적인 것이겠지요. 모든 사람의 죽음에 슬퍼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죽음에 슬퍼하지 않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것은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명백히 사회적인 문제점(혹은 생각해볼꺼리)를 갖고 있는 문제를 지극해 개인적인 문제로 환원시켜 그녀의 죽음에 슬퍼하지 않고 토를 다는 사람들을 '인간으로서의 예의가 아니다.'라는 아름다운 당위로 비판하는 사람들이 전 위에서 김수영이 말한 고급<속물>과 별 다를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당위는 그 자체가 거부할 수 없다는 권력이 있지만 그것은 또 다분히 위선적이고 뺀질뺀질한 말입니다. 저의 이런 생각은 다분히 위악적이라 그 사람들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겠지만요..암튼 간단하게 써서 제 생각이 잘 전달된것 같진 않지만 암튼 그렇습니다..^^
Commented by 리얼리스트 at 2005/12/05 04:43
덕분에 좋은 책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Commented by ☆*깨*☆ at 2005/12/06 15:14
네..꼭 읽어보세요^^ 읽고 있으면 맘이 편해지고 웃음이 나는..몇 안되는 책 같아요.
Commented by 바람 at 2005/12/08 19:54
슬퍼하지 않든 슬퍼하든 각기 사람들의 가치관 같아요.
슬퍼하지 않는대서 비난 할 필요도 없고 슬퍼 한대서 이상 할 필요도 없는 거라고 생각 해요.
각기 개인이 지닌 죽음에 대한 가치관 이라고 생각 했으면 좋겠어요.
전 죽음 앞에서는 늘 슬프거든요.
연세가 아주 많은데다 병환으로 돌아가신 분의 상가집에 갔다가 好喪이라고 하며 슬퍼하지 않는 사람들 보면 도 그 일이 슬퍼져요.
누군가가 떠나갈 대 진심으로 떠나고 싶어 떠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 하기 때문 이예요.
아마 죽음의 직 전 까지 갔었던 몇번의 경험으로 인하여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Commented by ☆*깨*☆ at 2005/12/08 21:21
네..^^ 바람님 말씀이 어떤 말인지 잘 알거 같아요.ㅋ
Commented by 여백 at 2005/12/28 13:13
저도 김수영 산문집 한번 읽어보고 싶어졌네요. 명동백작 참 재밌게 봤었는데 이비에스 무료로 다시보기 할 수 있어요. ^^
Commented by 커피광 at 2006/01/04 09:25
저도 김규항님의 B급 좌파를 읽고 김수영 산문집을 샀는데(전 개정판으로) 어제 도착했더라구요. 이제 시작하려는데 왠지 가슴이 두근거리네요 ^^
Commented by ☆*깨*☆ at 2006/01/04 10:44
여백/ 아 어제부터 보기 시작했는데 무척 재미나네요!! 오랜만에 매우 좋은 드라마를 만난 듯해요.ㅋ


커피광/ 개정판엔 한문이 없어서 훨씬 읽기 쉬울거 같아요.ㅋㅋ 한문을 잘 모르는데 한문에 많아서 조금 고생하면서 읽고 있거든요. 재미있게 읽으세요^^
Commented by amnpm at 2006/01/19 00:52
[김규항의 블로그에서 타고 왔습니다]저도 이 글을 읽으니까 꼭 한번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데, 문학이란 무엇인가는 혹시 학교 수업 교재로 읽으셨었나요? 저희 학교 수업 교재로 들고 다니는 친구를 봐서^^
Commented by 왕도비정도 at 2006/01/30 05:25
아- 저도 규항님 글보고 친구한테 생일선물로 사달래서 구했는데.. 이 친구가 시집과 산문집 다 사줘서 뭐부터 읽을지 행복한 고민중이랍니다.ㅎㅎ 명동백작을 무료로 볼 수 있군요. 좋은 정보 얻고갑니다.^^
Commented by ☆*깨*☆ at 2006/01/30 16:32
왕도비정도/ 가끔씩 버퍼링이 심하긴 한데 그래도 참 좋아요! 배우들의 연기도 멋지고...강추입니다.ㅎㅎ 시집과 산문집을 번갈아가면서 조금씩 읽으셔도 좋을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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