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위험한 생각 :: 노예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강한 정신'과 '약한 정신'에 대한 고민이 들었던 것은 얼마전 영화 태풍태양을 보고 난 후였다. 그 영화의 한 대사인 '우리는 지난 날을 반성하지 않았고 내일을 걱정하지 않았다'를 듣는 순간이었다. 나는 이 정신이 강한 정신이라고 생각했다. 내일을 걱정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지난날을 반성하지 않기 때문에. 그 영화를 본 후 내 머릿속은 계속 '강한 정신'과 '약한 정신'의 싸움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러던 중 최인석의 '이상한 나라에서 온 스파이'를 읽었다. 그리고 그 문제의식은 한단계 더 발전했다. 니체가 말한 '주인(강자)의 도덕'과 '노예(약자)'의 도덕으로!!


니체가 말한 주인의 도덕이란 " 인간 사이에 위계(등급,관원등의 등급)가 있다는 것을 믿고 자기를 긍정하고 스스로 가치를 만들어 내어 비열한 것을 거부하며 약자를 지배하려고 하는 도덕이고, 반면 "이에 대해 생명력이 약한 자는 강자에 대한 원한과 복수심으로 위계에 반항하며, 모든 것을 평등화 ·수평화하려고 하여 동정이나 박애 등을 덕으로 삼는 것"은 노예의 도덕이다.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인용) 최인석의 이 환상적인 리얼리즘 소설은, 전형적인 노예의 도덕에 사로잡혀 있다.


소설은 어둡고 씁쓸하고 추잡하다. 소설속의 현실엔 일망의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 나라는, '진짜 나라'가 아니다. 소설은 인간이 그리는 이상향 열고야국이 진짜 나라고 이 곳은 인간의 탐욕과 착취, 집착이 만들어 내는 苦의 세계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 苦나라엔 열고야국에서 온 스파이가 있다. 이 스파이의 목적은 현실의 간첩처럼 기밀을 빼오거나 사람들을 선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것을 다 남에게 베풀어 주고, 당하고, 학대받으면서 조용히 죽어가는 것이다. 피노체트에 맞서 무장하지 않고 죽음을 맞은 아옌데도 열고야국의 스파이고 주인공 심우영 대신 살인죄까지 뒤집어쓰는 작은년 또한 열고야국의 스파이다. 책 뒤에 평론을 쓴 한 평론가의 말대로 이 소설을 읽는 것은 너무나 불편하다. 이 세계의 음침한 그늘이 한점 가림없이 음울한 글자에 담겨 오롯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불편함 뒤에 남는 슬픔은 이것이 과장일지언정 허구는 아니라는 점.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열고야국의 스파이가 가진 것은 전적인 '노예의 도덕'이라는 점이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낮은 사람들과 함께 자신의 모든 것을 주면서, 일체의 복수를 꿈꾸지 않고 자신을 불태워 남들을 감화시켜가는 존재가 그 스파이들이다. 그들은 지구의 자전축을 바꾸기 위해서 우물을 파고 그 우물로 인해 바뀌지 않으면 3개,4개 가리지 않고 계속 파내려가리라 맘을 먹는다. 전두환을 용서하지 않고 응징하겠다는 사람에게 '복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지고 노동현장에 투신하려는 대학생에게 사회주의 국가에서 벌어진 광주학살 못지 않은 폭력의 실태를 조근조근 이야기한다. 그들이 모델로 삼고 있는 것은 맑스나 레닌같은 혁명가가 아니라 예수에 가깝다. 아니, 그 희생의 범위와 크기는 예수를 능가한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내가 든 생각은 '과연 그러한 노예의 도덕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였다. 난 저자가 이미 책에서 그 답을 내려줬다고 생각한다. '불가능'이라고. 책은 죽은자들의 화해로 끝을 맺고 있지만 그 세계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진짜나라'가 아니다. 이 진짜 나라는 여전히 추악하고 더러운 시궁창이다. 이런 시궁창에 열고야의 스파이는 계속 내려오겠지만 내려오는 족족 그렇게 고귀하게 죽어갈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고귀함'으로 바뀌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고귀함'으로 바꾸려는 시도는 매우 위험하다. 파시즘에 열정이 없었나? 그 순수하고 영웅적인 고결한 정신이 없었나? 쓸데없는 잡념으로 인해 또 횡설수설, 용두사미 포스팅이 되었지만 뭐 정말 요즘은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매우 위험한 생각이긴 한데..주인의 도덕...노예의 도덕...당분간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듯하다.
by ☆*깨*☆ | 2005/08/17 20:07 | 깨's Books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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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DESERTFISH at 2005/08/18 22:24
이 글을 놓쳤다면 참 아까웠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뒤늦게 업데이트 된 링크를 확인하다가 보게 되었네요. '위험'하지만 덮어두기엔 너무 '힘이 센' 그런 생각이라는 느낌. 답을 찾는 과정에서 꼭 건너야할 다리로 보인다고나 할까요?
Commented by ☆*깨*☆ at 2005/08/19 12:23
DESERTFISH / 전엔 이런 생각 전혀 안들었느데..요즘 좀 뭔가 '허무'해 졌다고나 할까요? 암튼 이상한 생각들이 스물스물 솟아나고 있어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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